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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참여하게 만드는 ‘감정-수업’. 2023.

인강 2023. 7. 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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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 고등학교 (2년차 교사) 독서교육 꼼수로 행복하기

 

김병섭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 https://dasidasi.tistory.com/

 

8학급에서 일주일에 2시간씩, 각 학급 25명 내외의 학생들과 6차시에 걸쳐 9편의 시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에 대한 192십 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30여 편의 시영상이 제작되었으며, 160여 편의 시평이 업로드되었고, 이 중 49 편은 A4 3페이지 분량의 깊이 있는 글이었고, 이 글들은 카카오 브런치의 모바일북 <내 인생의 시>로 발간되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 학생을 참여하게 만드는 감정-수업’.
수업에 학생들을 참여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은 감정이었습니다. 읽기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꺼내 놓고, 그것을 관찰하고, 비교해보고, 말하고, 듣고, 나누고,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저는 다음과 같이 시도했습니다.

 

 

1. 유튜브-비밀댓글-시수업

. 학생은 줄었는데, 학교는 더 힘들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40명을 가르치던 교실에 비하면 요즘 교실의 학생수는 정말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교사에게 더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학생수가 줄어든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학생 1, 1명에게 요구되는 돌봄과 교육의 수준이 더 넓고,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학생들이 먼저 그러한 넓이와 깊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은 고통에 예민하고, 권력에 예민하고, 감정에 예민한 듯합니다. 그만큼 고통과 권력과 감정에 대해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런 깊은 이야기는 그만한 신뢰가 깊어야 가능하겠지요. 그만한 경험이 깊어야 가능하겠지요. 그러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상황에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학생들 곁에서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국어교사입니다. 학생들이 만나는 성숙한 어른은 대부분 교사이고, 교과의 특성 상 그러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교과는 국어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바로 여러분, 국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국어교사는 그 자체로 학생들을 세상에 닿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이며 강력한 매체인 것이죠.

그러나 돌아보면, 국어교사의 매력적이며 강력한 매체로서의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국어교사는 매 시간 20명 내외의 학생들을 만나지만, 학생들을 11명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국어교사가 진행해야 할 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 11명과 일일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일반적인 수업 시스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났습니다. 국어교사와 학생이 1 : 1 로 만나는 수업,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음과 같이 시도했습니다.

 
 

 
 
 
 

. 혼자서는 힘들어서 시작한 수업 <내가 나와 함께 하는 팀티칭>

내가 나와 함께 하는 팀티칭 시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팀티칭이라고 하면 보통 두 명 이상의 교사가 한 교실에 같이 들어가서 하는 수업을 말하지요. 제가 시도한 수업은 내가 나와 함께 하는 팀티칭 수업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유튜브를 활용한 수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튜브로 영상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코로나 시절을 지나오며 시도했던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을 펜데믹 기간만이 아니라 엔데믹 기간에도, 온라인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 유튜브로 시강의를 하고, 비밀댓글로 시대화를 했어요.

-영상촬영은 노트북으로 했습니다.

-영상촬영 프로그램은 줌으로 했습니다. 줌에 화면녹화 기능이 있는데, 저한테 필요한 기능은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줌 화면설정은 줌- 자료 공유- 고급- ppt를 배경화면으로.

-줌 설정을 마치고 영상녹화를 클릭하시면 노트북이 그대로 카메라이자 녹음기가 됩니다. 요즘 노트북은 충분한 화질과 음질을 확보해 주더군요.

-화면구성은 시청자 입장에서 왼쪽에는 본문을 놓고, 오른쪽에 제 해설을 넣고, 저는 오른쪽 아래부분에 위치해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촬영은 학교 방송실에서 했습니다. 방음장치와 흡음장치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어서 별다른 장비 없이도 강의가 깔끔하게 녹음되었습니다.

-유튜브에 업로드 하실 때, 전체 공개가 부담스러우시면 부분 공개도 가능합니다. 유튜브에 업로드할 때 링크가 있는 사람에게만 영상이 공개되는 설정을 하면 영상 공유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은 30분 내외로 했습니다.

-배속은 허용하되, 건너뛰기는 금지했습니다.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영상촬영은 원샷으로 합니다. 실수하면 실수한 대로 했습니다. 실수가 발견되면 나중에 모아서 실수클립모음- AS특별판 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원샷촬영을 원칙으로 삼은 이유는 이렇게 안하면 제가 지치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지치지 않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했습니다.

-수업진행은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수업이 시작하면 노트북 카트를 끌고 교실에 들어갑니다. 출석을 확인한 후, 오늘 강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노트북과 이어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시작 후 10여분은 학생들의 편의를 돌봤습니다. 각정 기기의 이상이나 연결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영상 시청에 몰입하면, 저는 교실의 맨 뒤에 졸방대 책상에 노트북을 한 대 놓고 학생들을 살폈습니다. 20명의 또 다른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신기하고도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다 학생들 사이를 거닐며 질문을 받고, 질문을 하고, 조는 학생을 깨우고, 영상을 먼저 다 본 학생들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돌아와 교실의 맨 뒤에서 학생들을 살핀 뒤, 영상을 올린 학급밴드에 올라올 댓글에 집중했습니다. 학생들의 글을 읽고, 일일이 댓글을 써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수업은 교실에 두 명의 교사가 있는 셈이었습니다. 나하고, 또 내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와 함께 하는 팀티칭인거죠.

 

 

 

 

. 유튜브 시강의 녹화는 늘 똑같이, 4단계로 진행했습니다.

1단계는 기본 내용 파악입니다. 학생들에게 먼저 이 시의 주제가 될 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본 내용 파악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말로 된 시를 읽고, 누구나 그냥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정보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2단계는 깊고 넓은 이해 입니다. 이건 기본 내용 파악 정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이 있고 꼼꼼한 이야기들을 함께 했습니다. 주로 은유와 상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시 전반에 대한 해석을 합니다.

3단계 비판 추론 상상입니다. 시의 감정과 메시지에 대해서 비판하고 추론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시의 독자로서 우리는 시인의 관점과 의견과 이야기에 동의할 수 있지요. 물론,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시에 대한 추론, 비판, 상상의 질문을 시 1편당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6개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 질문 중에 1 개를 선택해서 네이버 국어수업 밴드에 댓글을 쓰게 했습니다.

 

마지막 4단계 표현입니다. 마지막에 가서야 표현법을 비롯한 시에 관한 주변 정보와 해설을 제공했습니다. 표현법 해설을 수업의 맨 마지막에 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시의 매력을 먼저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매력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사랑스러운지 아름다운지 내가 직접 보고 정말 감정적으로 느낀 다음에야,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알고 싶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 학생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렇게 진행해서 좋았던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첫째, 학생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강의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영상시청을 할 때 배속을 허락했습니다. 배속을 허락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정보 전달의 속도가 다릅니다. 붓으로 글을 전하던 시대에서, 펜으로 글을 전하던 시대를 건너, 가공할 속도의 키보드를 거쳐, 엄지타자가 300타인 시대입니다. 정보 전달의 속도는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정보 전달의 방법이 언어에서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전달의 속도가 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영상언어의 원어민입니다. 영상언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인 학생들은 영상물을 배속으로 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영상물에 익숙해진 이 학생들에게는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30대 한국어 원어민에게 누군가 3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속도로 말을 한다면, 그 느림을 참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1.25배는 기본이고 1.5배가 보통이며, 2배속으로 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다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학생들의 이해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이해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속도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 그렇게 하루 종일 자신의 속도에 따라 정보와 지식과 이야기를 소비하다가, 학교에 오면 너무 낯선 상황에 놓입니다. 선생님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유튜브 강의를 진행해서 먼저 좋았던 것은 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강의를 시청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학생들이 1:1로 교사와 만나는 듯이 시강의에 몰입해서 좋았습니다.

둘째, 학생들이 유튜브 강의에 몰입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은 교사와 1 : 1 로 만나는 듯이 강의에 몰입했습니다. 개인별로 지급된 노트북이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어폰이 학생들의 귀를 닫게 했습니다. 모니터와 이어폰으로 학생들이 화면 안의 교사와 강의에만 몰입하도록 시각과 청각이 통제되었습니다. 수업의 매체가 칠판에서 노트북과 이어폰으로 대체된 결과입니다.

칠판은 한 때 최첨단의 기기였습니다. 칠판만큼 한 번에 많은 양의 정보를, 많은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그렇게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는 매체는 없었습니다. 일반 대중이 칠판이라는 최첨단의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거의 학교가 유일했습니다. 그렇게 칠판은 과거 200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곳에서 활용된 위대한 매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효용을 많이 잃었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유일한 교육 공간이 아니며, 칠판은 더 이상 유일한 교육 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 시강의를 업로드하여 학생들이 노트북과 이어폰으로 시청하게 했더니, 교사의 얼굴이 학생의 두 눈에 바로 보이고, 교사의 목소리가 학생의 귓속에 바로 꽂히게 했더니 일단, 조는 학생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더불어 수업진행을 방해하던 학생들의 목소리도 거의 완전히 지울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강의에 몰입하고 싶었으나 강의에 몰입할 수 없었던 학생들이 더 깊이 강의에 빠져들었습니다. 교실 속의 위치에 관계 없이 학생들이 시강의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교실의 맨 앞자리 건, 교실의 맨 뒷자리 건, 학생들은 영상 속의 교사와 1 : 1로 만났습니다. 오히려 교실 뒤편에 있는 학생들이 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유튜브 속 자신에게 맡긴 교사가 교실 현장에서는 교실의 앞이 아니라, 교실의 뒤편을 서성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학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비밀댓글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학생들과 1 : 1 로 비밀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셋째, 정말 좋았던 것은 교사가 실제로 학생들과 1 : 1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강의 영상을 보고 나면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질문 3-6개가 제시되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다르지만 형식은 같았습니다. 그 질문 하나에는 시의 내용에 대한 질문과 학생 개인에 대한 질문이 함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비밀댓글로 답해야 했습니다.

 

저는 네이버 밴드라는 매체를 활용하였습니다. 네이버 밴드에 보면 비밀 댓글 기능이 있습니다. 저는 올해 학생들과 비밀 댓글을 쓰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비밀댓글로 댓글을 쓰게 했더니 학생들이 글을 정말 솔직하게, 진중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시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또박한 지식부터 자신의 삶과 상처에 대한 무거운 성찰까지, 댓글의 깊이와 색깔은 다양했습니다. 공개댓글을 쓰게 했을 때는 결코 만나지 못했던 글들입니다. 제가 같은 수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공개 댓글로 쓰라고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학생들은 굳이 비밀 댓글로 쓰더군요.

학생들의 댓글에 하나하나 댓글을 썼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강의로 바쁜 사람은 유튜브 속의 저였습니다. 교실 속의 저는 하나씩 올라오는 학생들의 댓글에 집중하며, 학생들의 이해와 분석과 성찰과 통찰에 집중했습니다. 시에 대한 설명과 학생의 삶에 대한 공감과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전했습니다. 못다쓴 댓글은 공강시간을 이용해 썼습니다.

학생들의 댓글에 답을 일일이 해 주는 것은 물론 간편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과 댓글로 비밀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는 즐거웠습니다. 시 한 편을 통해, 수업 한 시간을 통해, 학생들과 시에 대해, 삶에 대해, 자신에 대해, 세계에 대해, 이렇게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는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국어교사를 한 것 같습니다.

비밀댓글로 만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솔직했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의심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이런 솔직하고 진지하며 다정한 대화는 희귀한 일인 듯도 합니다. 누군가 신중하게 자신을 읽어주고, 따뜻하게 자신을 지켜보며, 자신의 선택과 노력을 응원해 주는 어른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거의 느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비밀댓글이 거듭될수록, 비밀댓글의 주제가 학생의 마음에 닿을수록, 저희들의 비밀댓글은 더 솔직하고, 더 진지하며, 더 다정해졌습니다. 복도에서,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눈빛이 점점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학생들의 삶도, 그리고 저의 삶도, 그렇게 부드러워지기를 기원했습니다.

 

. 가장 좋았던 것은, 시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은 마음껏 반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험기간이 되자, 제게는 정말 놀라운 좋은 점이 하나 더 발견되었습니다. 시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강의를 반복하며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대비하여 시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은 강의 영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특정한 부분이 마음에 들면 그 부분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시강의가 마음에 들면 전체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유튜브 시강의를, 자신이 가능한 시간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듣게 된 것이죠. 모르면 다시 듣고, 중요한 것 같으면 다시 듣고, 설거지 하면서 듣고, 알바를 하면서 듣고, 버스를 타고 가다 듣고,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멈춰서서 제 이야기를 골똘히 생각하게 된 것이죠. 심지어는 저와 1년을 보내고 헤어진 다음에도, 학생들의 유튜브 화면에 제가 만든 영상이 추천으로 뜨기도 했었습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이젠 헤어진 학생들을 다시 제 영상으로 이끌어 온 것이었지요. 저는 이것도 참 좋았습니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이 영상들은 곧 삭제될 예정이라는 예고도 학생들이 이 시강의 영상을 다시 듣게 하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점은, 제가 시강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튜브 시강의를 진행했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시강의에 흠뻑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시강의가 번거롭고, 부끄럽고,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작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제가 오로지 시강의에만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교실에서 학생들 앞에 서서 시강의를 했다면 절대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제 앞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이야기들, 누가 제 앞에서 제 이야기 따위에 관심 1도 없이 옆에 있는 아이하고 떠들고 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 누가 제 앞에서 휴대폰만 보면서 .. 언제 끝나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도 꺼져버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마구마구 나오더라고요.

오직 저 혼자만, 빈 교실에 남아, 오로지 노트북만 앞에다 두고, 강의를 하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시를 만나면서 느꼈던 감동을, 감정을, 경험을, 아픔을, 추억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질문은, 이것입니다.

 

교사의 수업은, 작품이 될 수 없을까요?”

 

 

 

 

 

그렇게 애써서 만든 선생님들의 수업은, , 작품이 될 수 없을까요? 왜 작품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혹시 우리의 수업을, 아무도 기록해 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다 뻗어나간 상상이 있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의 국어교사들이 모두 100만 유튜버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국어선생님들이 저마다 흥미와 재미와 의미가 가득한 컨텐츠를 만들어 학생들의 유튜브 창에 수시로 출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상이 몽글몽글 피어납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8학급에서 일주일에 2시간씩, 각 학급 25명 내외의 학생들과 6차시에 걸쳐 9편의 시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에 대한 192십 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30여 편의 시영상이 제작되었으며, 160여 편의 시평이 업로드되었고, 이 중 100여 편은 A4 3페이지 분량의 깊이 있는 글이었고, 이 글들은 카카오 브런치의 모바일북 <내 인생의 시>로 발간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처럼, 그냥 강의식 수업을 했다면, 이렇게 많은 반응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 댓글에 담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시 한 편과 강의 한 편을 통해 학생이 자기 삶을 돌아보고, 따져보고, 서로 묻고, 답하는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짧게나마 학생들 11명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요? 그냥 강의식 수업을 했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제가 준비한 말을 다 하기도 힘든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제 말을 끝내기조차 힘들었을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충분히 솔직하게 제 이야기를, 제 감정을, 제 감동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던지고 한 명 한 명에게 대답을 듣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수업이 아니었을까요?

시를 좋아하시는 선생님께 이 수업을 권합니다. 대화를 즐거워하시는 선생님께 더욱 이 수업을 권합니다. 학생들과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기쁘고 설레면서도 아프고 힘든 선생님에게 더욱 더 권합니다. 부디 도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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