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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최진영. 싸우겠다면서 싸우지 않는 사람에게 싸움은 가능할까? 단편소설수업. 가능할까?

인강 2023. 7. 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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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최진영. 싸우겠다면서 싸우지 않는 사람에게 싸움은 가능할까? 단편소설수업. 가능할까?

 

월간단편. 7월의 소설입니다. 최진영 작가님의 돌담을 읽었습니다. 싸우고 싶다면서, 싸우지 않는 사람에게 싸움은 가능할까요? 이 소설로 학생들과 수업이 가능할까요? 공부해 보았습니다. 부디 도움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라는 불법 첨가물을 사용하는 장난감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어느날 부터 내내 불편해 하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회사 임원들에게 선언한 후,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온 나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과수원집 장미를 추억합니다. 동경과 환상의 대상이면서, 열등감과 죄책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장미가 아끼던 동생이 대학생이 된 이후 사고로 죽었다는 것과, 그들의 부모가 마을사람들과 큰 싸움이 있었다는 것과, 그후 과수원 앞에 돌담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잊으려 했다는 것을.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록 더 잊고, 더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잘못에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른이란, 대체 뭘까요?

 

 

 

 

1. 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혹시 패배자여야 하지 않은가? 결국 도망자인가?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입 속의 뼈 같은 존재였고, 결국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궁금합니다. 나는 회사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던가요? 나는 처음부터 회사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이 가족이거나 유사가족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그에게 입 밖의 뼈였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어려운 사이였습니다. 2년 적금이 만기가 되면 퇴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4년이 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ㅏ. 

그러다 회사의 가해를 알게 됩니다. 자신도 회사 소속이었으므로, 가해자였습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나는 회사의 가해를 밝혀야 한다고, 멈춰야 한다고, 가해자들에게 선언합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나는 싸우지 않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돌아보지만, 결국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애초에 가해자들에게 그들의 가해를 선언할 때도, 내가 그 가해를 멈추기 위해 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인터넷 검색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피동형으로 말합니다. 수동형으로 말합니다. 

 

"내 정당한 월급을 그런 돈으로 주지 말라고. 그런 돈으로 내가 살아가게 하지 말라고."

 

이 말은 맞지만, 이 말은 틀립니다. 이 말에서 주인공은 회사입니다. 나는 없습니다. 나에게는 나가 없어 보입니다. 나에게 나가 있다면,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내 정당한 월급을 그런 돈으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돈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듯합니다. 나는 회사로부터 뱉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나는 피해자인가요? 가해자인가요? 혹시 패배자여야 하지 않은가요? 결국 도망자인 것이 아닐까요?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먼저 내가 나에게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부터 나는 한 걸음을 맞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희망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도망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나는 장미에 대해 깊이 추억하면서, 왜 결국 장미 이야기를 찾지 않는가?

 

"또래 아이들 중 열에 아홉은 재잘재잘 떠들고 이야기 지어내기 좋아했는데, 장미는 열에 하나에 속했다. 말수가 적었고, 천천히 움직였고, 편을 가르는 놀이를 싫어했다."

 

나는 결국 열에 아홉에 속한 듯합니다. 나는 재잘재잘 떠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지어내기는 좋아하는 듯합니다. 장미에 대한 나의 환상과 동경이 그렇습니다. 나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고, 동경합니다. 다른 이에게 더 따져 묻지 않고, 환상을 갖습니다. 그리고 열렬히 동경과 환상에 빠집니다. 장미의 동생이 되고 싶을 만큼. 열렬하게. 

동경과 환상이 큰 만큼 열등감은 깊어집니다. 그 열등감으로 결국 큰 잘못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깁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고, 내내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나는 결국 장미를 외면합니다. 장미래의 죽음으로 인한 장미네 가족들의 상처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끝까지 장미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장미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습니다. 장미의 현실에 대해서는 찾아보지 않습니다. 

나는 장미에 대해 깊이 추억하면서, 왜 장미에 대한 이야기를 찾지 않는 것일까요?

 

나는 여전히 장미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아직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마주할 용기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용기를, 자신의 동경과 환상과 열등과 죄의식을 인정한 용기를, 아직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퇴직한 교사의 돌담과 장미네 아버지의 돌담과 나의 돌담은 같은가?

 

"나의 신고와 그 언젠가는 상관 있는가? 모르겠다. 돌 하나를 쌓았을 뿐이다. 조사를 재촉하고 인터넷 카페와 sns에 터뜨리면 돌은 더 쌓이겠지. 내게 그럴 책임이 있는가? 의무가 있는가? 나는 뱉어졌다. 나도 처음부터 뼈는 아니었다. 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의 살이 되고 싶었나? 아니, 절대 아니야. 그럼 뭐가 되고 싶었지? 모르겠다. 더 나빠지고 싶지 않다. 한때 나는 장미의 동생이고 싶었다. 장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 아이. 눈보라가 몰아쳤다. 돌을 찾으며 길을 걸었다.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퇴직한 교사는 돌담을 쌓았습니다. 허망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금방 쌓았습니다. 생각보다 그 또한 허망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허망함도 함께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할 일이었습니다. 돌담을 쌓아두고 함께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장미네 아버지는 돌담을 쌓았습니다. 분노한 마음을 쌓아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담 없는 집 앞에 아주 길고 높게 쌓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쌓을 듯합니다. 그 분노의 마음이 길고 높았기 때문입니다. 장미 아버지의 분노는 더 길게 높게 오랫동안, 단단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나는 돌담을 쌓고 있습니다. 회사의 가해자들에게 가해를 인정하라고 선언한 것이 최초의 돌 하나였습니다. 조사를 재촉하는 일과 인터넷 카페에 알리는 일과 sns에 터뜨리는 일이 남았습니다. 나는 이것들이 모두 돌담을 쌓는 일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나는 돌담을 쌓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퇴직한 교사는 허망한 마음을 쌓았습니다. 장미네 아버지는 분노한 마음을 쌓았습니다. 그 안에는 꽤 많은 부분, 인간에 대한 허망함이 서려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들 이들은 자신이 원해서 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닙니다. 

나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묻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과 의무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는 문제입니다.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 나는 나에게 먼저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고 있는가? 허망함이든, 분노이든, 나는 나에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응, 나는 이것을 정말 원하고 있어. 

 

내가 기억하는 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때 뿐입니다. 어린 시절, 장미의 동생이 되고 싶었던 것. 장미에게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그 동경과 환상, 열등감과 죄의식에서 나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원하던 것에 대한 외면과 잊음은 결국 내가 나와 마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직면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싸우지 못합니다. 싸우고 싶어하면서도 싸우지 못하고, 싸우지 않고, 싸움으로부터 도망칩니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이 싸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깊이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프탈레이트 가소제의 기준치는 얼마인지, 그것을 얼마나 초과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어느 제품에 어느 정도가 첨가됐는지, 그것은 어떻게 증명할수 있는지, 그것으로 회사는 얼마의 이익을 얻었는지, 그 이익을 어떻게 했는지, 피해자들에게 보상은 어떻게 할지, 어떤 보상이 가능한지, 이 싸움은 얼마나 갈지, 그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디 까지인지, 어느 정도의 싸움을 원하는지, 내가 바라는 결과는 대체 무엇인지. 나는 묻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습니다. 첨가제 사용, 신고. 장미를 추억하면서도 장미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것처럼. 나는 돌을 찾으며 걷지만, 왜 돌을 찾는지 알 수 없고, 결국 자신이 무슨 마음인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4. 어른이란?

 

"연못 근처 작은 버드나무 아래에 우리만의 보물창고를 만들기도 했다. 연못과 마당을 돌아다니며 주먹만 한 돌을 주워 버드나무 아래로 날랐다. 그 돌을 동그랗게 쌓아 작은 동굴을 만들었다. 걷다가 예쁜 것을 발견하면 그 동굴에 보관했다. 

청색 빛이 나는 돌, 붉은 빛이 나는 돌, 과수원에서 발견한 조개껍데기, 마른 꽃잎과 나뭇잎, 야광 별과 도토리, 기찻길 옆에서 주운 손바닥만 한 액자, 길을 걷다 주운 펜던트,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분필... 사탕이 예뻐서 넣어 뒀는데 다음 날 개미가 바글바글해서 기겁한 적도 있다. 겨울에는 작은 눈사람 두 개를 만들어서 넣어 두기도 했다.  ...

동굴에 보물을 넣을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보물인지 아닌지 회의했다. 한 명이 보물이냐고 묻고 다른 한 명이 보물인 이유를 말하면 회의 끝이었다. 장미는 작은 수첩에 날짜를 적고 보물의 내용과 의미를 기록했다. 그럴 때 장미는 정말 특별했다. 나는 흉내도 못 낼 품격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돌담을 쌓은 적이 있습니다. 

장미는 어린 시절 그 때에 이미, 어른이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이입니다. 

 

어른이란 나의 보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란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 돌담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18. 50대 이상 140명 설문.

 

 

 

2021. 40대 이하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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