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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 고등학교 문학교사의 소소한 팁들. 고양이과 멘탈. 점심시간 청소. 교실 서류함 비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교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인강 2023. 7. 1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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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 고등학교 문학교사의 소소한 팁을 나눕니다. 쓸만하다기 보다.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는 예시 정도입니다. 혹 괜찮아 보이시면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꽤 쓸만했습니다. 
 
1. 개과가 아니라 고양이과
멘탈관리입니다. 전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개과의 마음이 아니라 고양이과의 마음으로 사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개과로 살았습니다. 멍멍 하는 그 개 말입니다. 함께 있는 게 좋았고, 함께 하는 게 좋았습니다. 공부도 함께 하는 것을 선호했고, 노는 것도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지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도 크고, 인정을 나누고 싶은 욕구도 컸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도 그렇게 관계를 맺으려고 했어요. 충직하고 신의가 있는 강아지들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담임 학급 아이들과 노래방을 가면, 큰 방을 빌려서 25명을 가득가득 채워서 같이 놀았습니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고 노래를 듣고 그랬어요. 서로의 실수도 못고 못남도 보고 잘남도 보고 격려와 응원을 서로 공개적으로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반이다! 는 정체성을 함께 누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고양이과로 살고 있습니다. 야옹야옹 하는 그 고양이 말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고양이과 스타일이었거든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모여도 몇 몇 학생들만 모입니다. 관계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불이 꺼져 있는 교실을 좋아하고, 커텐은 늘 쳐 있어요. 모두에게 인정을 받기보다 자신이 인정하고 선호하는 특정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해요. 예를 들면, 학생들은 이제 노래방을 가면, 2명-4명이 각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그 방으로 가죠. 아예 방을 이동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기도 합니다. 친한 친구, 신뢰가 있는 친구들에게만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반이다..하는 정체성은 글쎄요.. 거의 없는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을 고양이로 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집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너무 다가가지 않고, 너무 멀어지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는 데 익숙해 지려고 해요. 어느 고양이가 가까이 와 주면 나도 가까이 가 주고, 그러다 휙 떠나면, 그런가보다, 다음에 또 오겠지, 하면서요. 어느 누군가에게 웽 하며 상채기를 내거나, 앙칼지게 감정을 드러내며 싸워도, 저는 그런가보다 하고 다가가서, 어떤 일이 있었니? 하고 좀 무심한 듯 툭, 물어보고 있습니다. 관계보다 먼저, 감정을 읽어주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감정을 이해한 다음에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려고 하면서. 
 
 
 
 
2. 청소는 점심시간 끝나기 전 10분에, 담임샘과 함께.
청소는 종례 후가 아니라 점심시간에 먼저 하는 것을 권합니다. 
학생들과 가장 마음이 따갑게 부딪히는 것이 청소였습니다. 와..진짜.. 정말 드럽게 청소를 안하더라고요. 무언가 몸을 움직여서 환경을 바꾸는 일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어쩜 이렇게 청소를 안하나.. 도망도 쉽게 가고.. 이걸 매일 일상적으로 부딪히려고 하니, 힘들더라고요. 물론, 학생들도 힘들어 하죠. 부딪히기만 하고 개선이 안되서 이렇게 해 보았습니다. 
청소는 종례 후가 아니라 점심시간에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10분에 시작해서 마무리했습니다. 청소는 20명 학생을 5모둠으로 나누어서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안되죠.
제가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마다 교실에 가서 학생들과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번거로웠지만, 이게 제일 마음이 편했어요. 우리 학생들은 자신이 청소한 것을 누가 알아봐 주지 않으면 더 이상 하지 않더군요. 확실히 내적인 동기가 약해 보였습니다. 마음의 근육이 약해 보였어요. 누가 뭐라해도 해야 할 일이면 해야 한다고 여기거나, 하고 싶으면 하겠다는 마음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가 계속 곁에 있으면서 학생이 한 것을 알아봐주면 그래도 안하지는 않더군요. 
교실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희 반 교실에 점심시간 풍경은 커텐이 다 쳐 있고, 불은 다 꺼져 있고, 텔레비젼에 아이돌 음악이 흘러 나오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상에 반쯤 엎드려 핸드폰으로 인스타 릴스를 내내 보고 있습니다. 어둡고, 우울하고, 처져 있어요. 이럴 때 청소를 핑계로 애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고, 청소를 했습니다. 5분 정도 시간이지만, 그렇게 교실을 확 바꾸면 분위기가 환기되는 거 같았습니다. 자는 아이도 일어나도, 엎드려 있던 아이도 좀 걷고, 교실이 밝아졌죠. 오후 수업에 좀 도움이 된 듯 싶어요. 
물론 저도 좋았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2시간만 수업으로 만나기 때문에, 생각보다 학생들과 정을 쌓을 시간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런데 점심시간 10분이라도 학생들 사이를 오가게 되니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점심시간 청소를 안했을 때는, 하루에 조례 5분, 종례 1분, 딱 6분만 학생들 만나니까, 뭔가 좀 데면데면하고, 좀 어색하고, 좀 불편하고 그랬습니다. 함께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잘 안들었어요. 
 
 
 
 
3. 결석계 서류를 종류별로 20장씩 복사해서 교실 서류함에 비치하기
교실에 서류함을 비치하고 결석계 서류를 넉넉히 두시면 편리합니다. 
전문계 고등학교에는 결석이 많습니다. 질병결석도 많지만, 인정결석도 많습니다. 자격증 시험이 많거든요. 그래서 갖춰야 할 서류도 많죠. 한달마다 모으면 서류철이 두툼합니다. 교실에 서류함을 배치하면 좀 수월합니다. 2만원 내외에요. 여기에 결석계 서류를 종류별로 놓고, 학생들이 결석을 하면 다음날 나오게 해서 작성하게 합니다. 처방전이나 등등 서류도 같이 내게 합니다. 이것을 3월부터 해 놓으면, 나중에는 제가 꼼꼼히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학생들이 서류를 갖춰 오기도 하더군요.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몇 학생들이 챙겨서 오는 것만해도 한결 수월하더군요. 추천합니다. 
 
 
 
 
4.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첫시간에 보여주기
선생님들께서 먼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학생들에게 공유하시기를 권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더군요.
학생들을 처음 만나 저를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제가 새롭게 시도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피피티로 간단히 사진을 보여주면서, 제가 새롭게 도전했던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의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많이 좋아해 주었고, 저에게 큰 호감을 주었어요. 
아마도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큰 불안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전공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불안은 작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 길이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이 길에서 정말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어서요. 과정에 있지만, 결과를 내 본 적은 없죠. 그래서 내내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실력에 대해 회의하고, 그래서 불안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먼저 도전해 본 것이죠. 과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과까지 가 본 것이죠. 어느 정도의 성공도 하고, 어느 정도의 실패도 한 것이죠. 그런 이야기들이야 세상에 많지만, 그런 이야기를 직접 실천한 실제 인물을 눈 앞에서 마주하는 일은 많지 않죠.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과정을 겨쳐 결과를 얻고, 그 결과를 다시 과정으로 삼아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려고 애쓰고. 무엇보다, 꿈을 꾸고, 새로운 꿈을 꾸고, 말도 안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언젠가 꼭 이루겠다고 말하고, 먼저 실패하고, 먼저 좌절하고, 그렇게 다시 먼저 도전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위로를 받는 거 같습니다. 와.. 저 선생님도 저렇게 실패하는구나. 그래도 도전하는구나. 그런데 즐거워하는구나. 정말 저럴 수 있구나. 하면서 말이죠. 
 
 
 
 
5.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기
누울 자리를 먼저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교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치유일 뿐, 치료가 아닙니다. 이미 교사에 대한 신뢰를 잃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미 교사에 대한 관심을 잃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교사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 증오가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로부터, 어른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고통 받고, 배신 당하고 괴로움을 당했던 기억들이 있는 학생들입니다.  원인은 어렴풋이 짐작되지만, 해결방안은 도무지 찾기 어려운 학생들, 교사로서는 도무지 더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그런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있습니다. 
 
자신이 현재 그런 학교에 있다고 여기신다면, 부디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더구나 자신이 고통에 섬세하고, 언어에 섬세하고, 관계에 섬세한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서둘러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섬세한 분일수록, 고통은 더 크게 오래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지금 눈 앞에 드러난 문제는 근본적으로 선생님의 잘못도 아니고, 학생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사의 잘못이며, 학생의 잘못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물론, 드러난 한 사건만 뚝 떼어놓고 보면 교사의 어느 말과 행동이 잘못일 것이며, 학생의 어느 말과 행동이 심각한 잘못으로 보일 것입니다. 물론 그 말과 행동은 잘못이고, 명확히 처벌해야 합니다. 징계도 교육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엄하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교육이 되어, 학생과 교사를 변화시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한번 더 괴로울 뿐입니다. 모두가 괴로운데,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한 괴로움이 또 다른 괴로움을 낳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통에 섬세하고, 학생에게 정성이 있는 선생님일 수록 더 크게 오래 지속적으로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고 더 단단하게 자신을 꾸미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화려한 화장으로, 과감한 노출로, 거친 욕설들로,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베일 말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있는 힘을 다해 곁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 중에 꽤 많은 학생들은 상처를 알아보는 어른에게 더 큰 상처를 주려고 하더군요. 근본적으로, 자신의 약함이나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 알아본다는 것 그 자체에 분노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교사가 더 크게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교사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명확히 합시다. 교사가 시도할 수 있는 한계는 치유까지라고 여깁니다. 치유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상처를 돌볼 때 가능한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게 하고, 그 상처를 돌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한 뼘 더 성장하도록 인도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가능한 것은 '시도'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왜냐하면 치유는 결국, 학생 자신이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의 개입은 치유를 시도하는 것, 그 이상은 불가능입니다.
 
치유가 불가능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상처가 썩고 썩어서 고름과 악취가 나고 관계를 부수고 인성이 박살나는 상황에 있는데도, 자신의 말과 행동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않으려는 상황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입니다. 치료는 의사의 영역입니다. 
 
좋은 선생님이 필요한 학생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더구나 고통에 섬세하고, 언어에 섬세하고, 관계에 섬세한 선생님이 필요한 학생들은 세상에 분명히 있습니다. 선생님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더 잘 도울 수 있는 학생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마음 아파 하지 마세요. 이미 충분히 애쓰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학생들 안에서 내내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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