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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브랜딩/툴툴툴- 소통

특별기고-나는 모른다라고 정확하게 말하기

by 인강 201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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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독서운동-책읽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김병섭, 박창현 지음 / 244쪽 / 11,000원 / 양철북

수업을 기획할 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교사가 지치지 않는 수업이어야 한다. 아무리 멋진 뜻과 활동으로 가득한 수업이라도 교사가 지치면 그 수업은 생동감을 잃는다. 둘째, 교사의 가르침은 학생의 배움으로 완성된다. 교사가 아무리 화려하게 열정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그것이 학생의 배움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수업은 결국 실패다.
‘단편소설’은 이 두 가지 원칙을 실현하는 데 정말 매력적이다. 대개의 학생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깊고 넓은 재미와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학생들이 해석의 주인공이 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멋진 작가들의 재미난 단편소설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작품이 재미있다는 것만으로 수업이 성공하지는 않았다. 원망과 분노와 좌절과 포기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찾은 몇 개의 길이 있다. 고난도 있지만 분명 황홀한 길이었다. 그 즐거운 수업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어 소설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양철북)을 썼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방법으로 실제로 소설 토론수업을 진행하며 유용했던 방법을 소개한다.

‘모둠 대항’ 질문게임
학생들이 모둠별로 바탕글에 대한 여덟 개의 질문을 만들고 퀴즈대결을 통해 해답을 나누는 방법이다.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찾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글의 핵심으로 다가간다. 남학생들에게 더 적절한 방법인 듯하다. 대결을 한 후 서로 나눈 질문과 해답을 정리하다 보면 학생들의 눈빛이 이전보다 깊어져 있다. 교사가 모둠 사이를 돌며 질문-해답을 살펴주면 더욱 좋다. 구체적인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바탕글에 대하여 개인별로 질문과 해답을 2개씩 만들어 모둠별로 총 8개를 만든다.
② 모둠별로 협의하여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별점을 매긴다(별 3개짜리 3문제 / 별 2개짜리 3문제 / 별 1개짜리 2문제).
③ 모둠원 중 한 명이 상대방 모둠원 한 명과 자리를 바꾸어 앉아 질문게임을 진행한 후, 별의 개수를 합산하여 알려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④ 교사는 학생들이 제출한 문제지를 모으고 그중에서 재미있거나 의미있는 질문들로 최종 퀴즈대회를 진행한다.
⑤ 최종 점수를 합산하여 일정 수준 이상을 수행한 모둠에게 상품을 제공한 후 강의를 진행한다.
질문게임에서 질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탕글의 사건과 인물, 상황과 맥락을 통해 우리가 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것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둠 함께’ 질문게임
간단하면서도 작품의 핵심에 단번에 들어갈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구체적인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모둠별로 중요한 질문 1개를 만들어 교사에게 전한다.
② 교사는 모두가 질문을 볼 수 있도록 칠판에 기록한다.
③ 모둠별로 자신들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모둠의 질문 1개를 가져가 10분 동안 풀어본다.
④ 이 시간에 교사는 시간이나 공간 순서, 중요도 등 수업 흐름에 맞게 질문을 재배치한다.
⑤ 교사가 정한 질문의 순서에 따라 모둠발표를 진행한다.
⑥ 발표 내용에 대한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그림 양철북(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제공>

학생들의 발표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때 교사의 대응이 중요하다. 교사가 오류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토론이 깊어진다. 학생이 질문을 찾고 해답을 찾게 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정리된다. 때로 그 질문들은 교사의 수준을 넘어선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수업을 진행했을 때 들었던 질문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왜 창선이에게만 ‘창선’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주현이라는 아이였다. ADHD 판정을 받고 약을 먹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자신 없는 그 아이의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선택한 다른 모둠의 학생들이 발표했다. “상품이 되려고 아우성치는 ‘레디메이드-기성품의 세상’에서 창선이만 인간이니까요. 그는 상품이 되길 바라지 않아요. 배움만을 원하죠. 인간의 이름을 가질 만한 유일한 인간이에요.” 주인이 되어야 발현되는 능력이 있다. 이 수업은 그것을 이끌어낸다.

질문수업의 의미
모든 수업의 시작은 근본적으로 ‘질문’이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수업을 이끄는 힘이 된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초고속 정보 검색이 가능한 환경이므로, 정보를 확인하는 질문으로만 채워지는 수업은 스마트폰을 이길 수 없다. 스마트폰의 놀라움은 인정하되 스마트폰을 넘어서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스마트폰이 있다고 해도 검색창에 필요한 질문을 입력하는 것은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하고 싶다. 학생들이 정보를 넘어 통찰과 성찰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수업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 시작은 질문이어야 한다.

질문의 힘을 키우려면 ‘나는 모른다’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질문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고, 따지고, 상상한 것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물었다. 본문의 한 줄, 단 한 마디 대사라도 내 감성과 논리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을 찾으려 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이렇게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이 정말 사랑할 만한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을 학생들에게도 요구했다. 질문이 오가는 게임 속에서, 마음이 맺힌 토론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물었다. 이것은 정확한가? 근거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우리가 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만큼 정말 사랑스러운 작품인가?

정확함에 대한 동경은 결국 ‘사랑’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한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최저점에서 최고점까지 간단한 인상에서 복잡한 논리까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은 거의 작품 속을 함께 살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다’가 ‘살아가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풍문이 사실이라면, 함께 살아가는 일은 작품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이것이 연습이 되길 바란다. 어차피 소설이란 종이뭉치일 뿐, 그것이 향하는 곳은 결국 사람이 아닌가. 잠시나마 한 작품과 살아보려는 이 수업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이어지길.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감정의 최저점부터 최고점까지, 한 사람의 간단한 일상부터 복잡한 생각의 타래까지 섬세하게 살피는 그 황홀한 고난의 길을 그들이 걷는 데 이 수업이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것은 수능 따위의 문제풀이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힘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의 시작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김병섭_인천송천고 교사,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저자 / 2015-10-0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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