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무너졌다. 아니, 학생들이 무너졌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학생들의 척추가 만성적으로 무너졌다. 수업을 시작하고 5분 만에 학생들은 고꾸라지는 제 몸을 이기지 못했다. 물리적인 현상이었다. 수면시간이 2-3시간을 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또한 정신적인 현상이었다. 더 이상 교실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칠판을 봐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 때문이었다. 접속하는 순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체험은 강렬했다. 그는 선택했고, 세계는 반응했으며, 그는 성장했다. 이 모든 것들이 눈으로 화려하게 확인되었다. 다들 그러하듯이, 그들도 언제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그러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실의 주인공은 교사였다.
다음은 스마트폰이었다. 접속하는 순간, 그를 전 세계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는 체험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진촬영도, 영상제작도, 시와 소설, 시나리오나 웹툰까지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이미 그들의 손 안에 있었다. 재미있는 컨텐츠는 돈이 되었고, 큰 돈이 되었고, 그것은 결국 의미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였다. 놀랍게도, 이 공간에서는 재미가 의미도 만들었다.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실에서는 교과서와 진도가 의미를 결정했다. 재미는 안중에도 없었다.
교사가 수업의 중심이며 교과서와 진도가 수업의 가장 중요한 질서였던 교실이,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점점 무너져 갔다. 그러나 교실을 무너뜨린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이제까지 그들에게 가장 든든한 뒷배였던 것이 그들을 배신했다. 그것은 입시, 놀랍게도 그것은 입시제도였다.
3년간 학생들의 삶을 기록한 학생부와 ‘논술,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전형이 확대되었다.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전체 대학 입학생의 70%에 이르렀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일반고에서는, 수시전형으로 진학한 학생의 수가 대학에 진학한 전체 학생 수의 90%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수시전형은 일반고의 진학지도에서 학교의 역량을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이 되었다.
수시전형을 이끄는 입학사정관들은 수능과 내신의 등급 외에, 학생에 대한 교사의 ‘개별적인 기록’을 요구했다. 문제는 그 기록이 ‘평가’가 아니라 ‘관찰’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교사에게 학생 개인의 자발성과 성실성, 창의성, 문제해결력, 리더쉽과 팔로우쉽 등을 관찰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첨부하여 기록으로 남겨주기를 바랐다. 평가는 입학사정관의 몫이었다. 그들은 교사에게 기록을 원했다.
교사에게 고단한 요구였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요구였다. 학생들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데에 일제식 강의는 비효율적이었다. 교사는 교실의 무대를 학생에게 넘겨야 했다. 학생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드러낼 동기와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교과서의 권위도 빛이 바래 갔다. 진도가 아니라 학생을 따라야 했다. 교사는 학생의 선택에 반응하며 함께 격려하고, 학생 개인의 성장을 도모해야 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자발성’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재미가 있어야 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교실에 들어왔다. 곳곳에서 원망과 피로의 한탄이 들려왔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정말 교실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부터 시작이었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현저히 줄었다. 교사의 목소리가 낭랑하던 교실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가득 들어찼다. 학생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활동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창작하는 일에 학생들은 열광했고 그들의 기록은 책으로, 사진으로, 영상과 영화로 확대되었으며 그 결과물들은 때로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다. 그러다 돌아보니, 어느 새 그들 곁에 책이 쌓여갔다. 사용법이 간단하면서도 학생을 주인공으로 존중하고 학생의 다양한 취향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학생들의 논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데에 책만한 것이 없었다. 교실이 무너지니 광장이 열리고 책장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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