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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맛집

수업단상-수업평가

by 인강 201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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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평가
를 온라인 카페로 받았다.

 

다음 카페에 투표 기능이 있어

 

한 학기 수업을 짧게 목록으로 정리하여 투표를 부탁했다.

 

시간은 아침 보충시간, 비어있는 컴퓨터 실에서 실시간으로 진행했고

 

투표 후에 반드시 200자 이상, 자신이 선택한 이유를 댓글로 달아달라는

 

마지막 부탁과 얼마간의 협박(?)을 했는데

 

다들, 열심히 성실하게 진지하게 대해 주어서 고마웠다.

 

 

 

 

 

주제는 세 가지.

 

수업진행방식에 대하여,

 

가장 지루하고 무익했던 수업,

 

가장 즐겁고 유익했던 수업..이다.

 

 

 

 

 

 

수업진행방식에 대한 친구들의 글에 웃다가, 멈칫 하다가, 조심 하다가,

 

 

 

지루하고 무익했던 수업에 대한 친구들의 글에 심장이 벌렁벌렁,

 

얼굴이 달아오르고, 아이고..창피하고, 또 미안하고, 한편으로 아쉽고, 심지어는 밉기도 하다가,

 

 

 

즐겁고 유익했던 수업에 대한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는

 

가슴 한 켠에 번지는 짠한 고마움으로, 멈칫했던 마음을 눅인다.

 

친구들의 가슴 속에, 머리 속에

 

우리들의 수업은 몇 개의 낱말로 남을까?

 

아니, 남기는 할까?..

 

 

 

부디, 친구들이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기를, 바란다.

 

 

 

 

 

 

아... 이렇게 일년이 갔구나.

 

친구들 덕분에, 정말 즐거운 1년이었다.

 

고맙고,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말, 고맙다.

 

 

 

내내 행복하기를.

 

마음 깊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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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선생님께


종이글로 하는 실명의 수업평가에 대한 추억이 하나 있어요.

수학교사로 첫발령을 받아 인천 변두리 중학교, 거칠고 무지막지한 2학년반의 담임을 맡았던 은사님은

공부를 꽤나 하던 아이들과 전교에 유명한 사고뭉치들이 공존하며

정말이지 대단한 사고들을 쳐대면서도 기묘할 정도로 잘 어울려 다녔던 우리반과 지내며,

그야말로 악전고투하셨어요.

24살, 청순한 대구 아가씨였던 은사님도 나름 강단이 없는 분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날뛰는 마음들이 얽히며 폭발하는 그 시기의 아이들과 함께 하며 정말 많이 힘들어 하셨지요.

우리 앞에서도 몇 번이나 눈물을 보이시며 끝내는 교실을 나가버리셨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그때는 솔직히, 선생님이 왜 그렇게 아파 하셨는지 몰랐지요.

너무 어렸어요. 

 

사람의 정성과 감정을 참 천연덕스럽게 비웃고 조롱하는 아이들의 무지막지함이

얼마나 아프고 아픈 것인지를 그 때는, 정말 몰랐었지요. 어렸어요, 정말.. 

그런데 그렇게 어려우신 가운데에도 은사님은 여러모로 저를 많이 아껴주셨는데

그 큰 계기는 1학기 말에 했던 수업평가였지요.

 

누런 갱지에 한 학기 수업 동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으라는 말씀을 듣고

왜그랬는지 저는, 제 가족사를 써서 냈어요. 지금 저로서도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인데

그냥, 자기 안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아무거나 써 봐라..하는 주문을 처음 들어봐서

그냥 하라는 대로 했던 게 제일 큰 이유겠지만(제가 그렇게 속이 없이 모자란 놈이었거든요)

나름,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었지요.

 

은사님이 보시기에는 134의 키로 전교에서 두 번째로 작았던, 

그런데 전교에서 가장 큰 철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달그락 거리며 뛰어 다니던 쪼끄만 녀석이

빨빨 거리고 잘 다니고 많이 웃고, 거친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고, 또 성적도 곧잘 나와 귀여웠는데 

그 녀석이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를, 그것도 그 내용이 꽤나 거칠고 아픈 이야기들이라 놀라셨었던 듯해요.

이후로 저의 안부를 따뜻하게 물어주시고 챙겨주셨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3 때까지 이어져서, 생일선물과 편지를 보내 주셨었지요.

 

정말 모질도록 아프셨을 텐데도, 

그럼에도 여러 다양한 학급행사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은사님의 정성을

그때는 솔직히 잘 몰랐어요. 물론 감사하다는 생각, 늘 했지만

그 정성이 얼마나 외롭고 아프고 고된 시간을 견딘 후에 나오는 것인지 정말 몰랐었지요.

내내 모르다가, 교사로 살아보고나서야, 아.. 깨달음처럼 오던 그 마음이란..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또 애달파서

지금은 은사님을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우르릉..하지요.

 

 

 

 

 

 

 

수업평가를 실명을 밝힌 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내 맴도는 데에는 이런 추억도 큰 몫을 합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은 그렇게 받았는데 남자중학교 아이들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제가 원하는 만큼의 밀도 있는 평가를 받아 보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실명이고, 또 손글로 써야 하는 부담 때문인가 싶어서

고등학교로 옮긴 후에는 익명으로, 인터넷글로 받고 있지요.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요, 온라인으로, 익명으로 받으니 

많은 아이들의 의견을 바로 볼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의 의견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들을 볼 수 있어 좋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익명으로 받다보니,

좀 험한 말들도 쉽게 하고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지요.

무엇보다 제가 소심해서,

수업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의 글을 만나면 며칠이고 내내 맴돌아서..좀 많이 아프더라고요..

 

 

 

수업평가 후 마지막 수업시간에, 평가에 나온 비판과 비난의 글을 함께 보며

마지막 수업의 마무리를 다음과 같이 하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사람은 반드시 권위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비판은 소중합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더욱, 여러분은 저의 가장 귀한 스승입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그 거침없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한 가지 부탁은 그 비판을 온라인의 익명에서 나와

교실 속에서, 당당하게, 또 겸손하게 밝혀 달라는 것.

학기 중에 이런 비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의 수업은 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비판은 정말이지, 그 자체로 훌륭합니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그 날카로운 비판력을 당당함과 겸손함 속에 드러낼 줄 아는

정말 훌륭한 학생으로 성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업을 함께 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늘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아리고, 안타까운 건 어쩔 수가 없데요.

평가란 당연히 아픈 부분이 없을 수 없고, 아파야 좋은 것이기도 한데, 에고..

제가 모자란 탓이겠지요.

 

..어제 육아를 핑계로 한 동안 가지 않던 성당에

아내에게 이끌려 정말 오랜만에, 성탄미사를 드리면서

내내 기도했지요. ..

 

흠.. 아무래도, 나를 내려놓고 무릎 꿇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쉬기도 해야 할 듯하고요..

 

2009년이라는 시간을, 이제 보내주어야겠어요.

맑게 비워야. 또 다시, 시작할 수 있겠죠.

 

 

음..이렇게 한 해를 보내네요.

 

 

내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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