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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맛집

친구의 촌지와 이명박

by 인강 2011.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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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몇 년의 힘든 시간을 지나 건강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한 친구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나눴다.

 

기운을 북돋는 자리에 기운이 우렁찬 사람들이 모여서 자리는 즐거웠다.

서로의 삶과 사람과 일과 사랑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어느 결에 세상 이야기로 넘어온 우리는,

반대의견이라 할 만한 것들은 끔찍할만큼이나 폭력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세상을 개탄하며

'권력을 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다 한 나라의 정치적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로

자신의 분을 정리한 한 친구가 이번에는 안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아이에 대한 염려로

그의 안해가 어린이집 선생에게 5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보냈다는 것이다.

영 마음이 불편했던 그 친구가 안해에게 보낸 몇 마디 설득의 말들은

무책임하고 무지한 남편네들의 고지식 정도로 돌아왔다며 속상해 하면서도

친구는 상황의 어쩔 수 없음을 또한 안타까워하며 무서워 했다.

 

친구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럴 수 있어.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였다.

자식의 삶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을 면전에서 박하게 굴 수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못 본 시간 동안, 친구와 내가 얼마나 세상과 삶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일은 몇 마디 말로는 도저히 합의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식에 대한 일을 결정하는 데에, 가장 강력한 설득의 근거는 '행복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저 내 삶으로, 내 아이의 삶으로,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증명해 보이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물론, 이렇게 해도, 그건 연기이거나 패배자의 자기 합리라며 도리질 치는 사람도 여전히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중요한 건 '즐거운 놈이 이기는 거다'라는 것이다. )

 

 

인질경제라는 말이 이렇게나 들어맞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이란 정말이지, 인질을 잡고 돈을 뜯어내는 악질경제다.

이 험한 세상에, 딸을 내보낼 부모의 한 사람으로 나 역시 친구의 맘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촌지는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린이집 선생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부모의 자연스런 걱정은 몇 만원 간편한 촌지보다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명확하고도 예의바르게 자신의 분노를 전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결코 간편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부모의 가르침'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 걱정이 더 깊어진다면,

그런 촌지를 선생에 대한 존경이나 예의쯤으로 여기는 그런 역겨운 어린이집을 거부하고

아이의 삶과 꿈이 트일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는 것이 필요할 테다.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그러나 끝내 묻지 못한 것은

우리가 모두 분개하는 우리 밖의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확인하지 못한 '우리 안의 이명박'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와 함께 촌지를 보내는 우리는, 대학에 가야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권력과 돈에 눈이 벌건 몇 개 유명 대학에 아이들을 보냈다는 그것 하나로 성취감을 느낀다는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분해하는 이명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언제 시간 되면, 그 친구와 깊이 술 한잔 나눠야 겠다.

 

 

 

 

다시다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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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영성의 시대라던가? 어딜 가나 영성이 유행이다. 진정한 인간적 소통이 사라져버린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이 명상이나 이런저런 정신수련을 통해 피폐해진 육체와 정신을 치유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영성이 그런 기능적인 부분만으로 대변되고 상품화하는 일은 걱정스러운 데가 있다. 영성이 단지 그런 것이라면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수행만 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영성가일 텐데, 예수나 붇다가 수행의 경지가 모자라서 저잣거리의 인민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걸까?


영성의 본령은 세상의 변혁에 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설파해왔듯 세상이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요소들이 빠짐없이 연결되어 순환하는 거대한 유기체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사회체제에서 살아갈 때, 그 사회체제를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많게든 적게든 그 사회체제의 가치관에 물들게 된다. 오늘 대공장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이 ‘사람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임금투쟁에만 몰두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상품화’하는 모습이나, 시장주의 교육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제 아이 시장 경쟁력은 참으로 알뜰하게 챙기는 모습처럼 말이다.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 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즉 내 밖의 적과도 싸워야 하고 내 안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이 혁명이라면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이 바로 영성이다. 20세기 동구사회주의의 실패는 영성의 결핍이 세상의 변혁에 얼마나 결정적인 관련을 갖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혁명이 성공해서 전혀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든다 해도 사회성원들이 기존의 체제의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는 한 혁명은 단지 ‘권력의 교환’으로 귀결하게 된다.  


 

이명박 씨의 등장은 한국 사회가 영성의 위기를 맞았음을 드러냈다. 이명박 씨를 욕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명박 씨가 외계에서 침략한 무뢰배인 양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명박 씨는 오늘 한국사회의 성원들, 더 큰 평수의 아파트와 더 비싼 자동차와 통장의 잔고를 늘이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성인들과 신형 핸드폰과 유행하는 신발을 사지 못하면 자존심을 구긴다고 믿는 그 아이들의 순정한 반영이다. 한국사회가 그런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되면서 그에 가장 걸맞은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이명박 씨는 우리의 영성을 더욱 막장으로 몰아간다. 누구든 이명박 씨를 반대하고 욕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쉽게 선인이 되고 정의로울 수 있고 심지어 진보적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씨 덕에 사람들은 영성은 커녕 최소한의 자기성찰조차도 면제받게 되었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스스로를 더 상품화하는 일이, 시장주의 교육에 반대한다면서 제 아이 시장 경쟁력은 알뜰하게 챙기는 일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허접하게 살아도 2MB보다는 낫지!’


 

결국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명박 씨와 싸우면서, 그를 욕하면 욕할수록 그와 더 닮아가고 있다. 이명박 씨가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여유만만한 것도 실은 그래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그 유일한 방법은 물론 영성의 회복이다. 적은 둘이라는 것, 적은 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 밖의 적과 싸우면서 동시에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것,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혁명가는 영성가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영성가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 말이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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