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과 함께 읽었어요
김병섭 ∥ 인천 송천고등학교 kkamjangee@gmail.com
김진영 ∥ 수원 수일고등학교 2459466@hanmail.net
임미진 ∥ 울산 범서고등학교 enj0412@hanmail.net
1.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막상 독서교육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런 푸념을 하십니다. “저도 책을 잘 읽지 않는데 누구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겠어요.”, “저는 독서토론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수업시간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자신감 있게 독서교육을 해나가려면 선생님들 스스로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독서교육을 하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하지 않더라도, 교사 독서 모임을 꾸리는 것은 선생님들의 삶을 좀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책과 삶을 나누는 모임 활동을 통해 팍팍하고 고된 교직 생활을 견디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서 나와 다르지 않은 고통과 아픔이 있음을 발견하고, 더불어 그것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며, 나아가 무기력했던 나의 교실을 서서히 움직일 대안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제가 교사 독서 모임을 선생님들께 권하는 이유입니다.
교사 독서 모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시 ․ 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서 토론 연수의 수강생이 되어 참여하는 독서 모임도 있고, 평소 가까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드는 독서 모임도 있습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 사이의 독서 모임일수도,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이 모여 만드는 모임일수도 있습니다. 같은 교과 선생님들의 모임도, 다양한 교과의 선생님들이 모여 만든 모임도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모임이 각각의 특징을 지닙니다.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 운영이 잘될지 흐지부지 될지에 대해 미리 염려하는 것보다 각각의 상황과 실정에 맞게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님들의 독서 모임을 통해 시작되는 작은 시도들이 밀알이 되어, 침체된 학교 현장을 아주 조금씩 바꾸어가리라 믿습니다.
2. 교사모임, 이렇게 진행하면 더 좋습니다
2.1. 함께 모여 책의 목록을 정하기
첫 번째나 두 번째 만남까지는 모임을 주도 하는 사람이 함께 읽는 책을 정할 수 있으나 그 후의 책은 모임의 구성원이 함께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정한 책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에 각각의 구성원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여 모임이 활기를 띕니다.
해당 분야의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임에서 특정한 테마를 정해 같은 분야의 다양한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대로 깊게 공부한 듯한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교사 모임이라고 해서 항상 학교생활과 관련된 책만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순수 교양이나 사회 전반을 다룬 있는 책을 읽고 이야기할 때에도 나름의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온전한 나, 학교를 넘어서는 범위의 사회를 돌아보고 사고하고 있다는 생각에 교육, 학교 관련 도서를 읽을 때와는 또다른 만족감을 얻습니다.
2.2. ‘직접 읽은 책’을 추천 받기
독서 모임의 성공 여부는 어떤 책을 선택하여 읽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러한 시기에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책 참 좋다는 소문만 듣고 책을 선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모임의 구성원에게 책 추천을 받을 때에는 그 조건으로 ‘추천자가 50쪽 이상은 읽어 본 책을 권하기’ 라는 식의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책을 읽고 이야기할 때에 그 내용이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책은 토론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독서 토론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사담 위주로 진행되면 구성원들이 모임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이 줄어듭니다.
2.3. 돌아가며 발제문 작성하기
독서 모임을 운영할 때에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제문을 작성해오는 것이 좋습니다. 발제문은 토론을 하기위한 재료입니다. 발제문이 없으면 토론의 방향이 잡히지 않아, 대화의 방향이 책 읽은 후의 감상을 초점없이 나열하는 식으로 흐를 우려가 있습니다.
발제문을 작성할 때에는,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 설명한 후, 그러한 의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어 씁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내용이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가 몸담고 있는 교실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관련 도서나 책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소개하여도 좋습니다. 발제문의 구성은 작성자와 도서의 특징에 따라 적절히 변용할 수 있습니다.
발제문에서 절대 빠지면 안되는 요소는 ‘함께 생각할 문제’입니다. 발제문은 토론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글이니까요.
수업이나 사제 독서 동아리 활동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책을 읽은 경우에는, 발제자가 학생들과의 활동을 할 때에 활용할만한 생각거리를 발제문에 제시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소설은 작품 자체의 내용에 대한 발문과 동시에 현실의 상황과의 관련되는 점을 생각거리로 제시하면 논의가 더욱 깊어집니다.
2.4. 몇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하지 않도록 살피기
발언권에 대한 원칙을 세워두지 않으면 몇몇의 구성원이 발언을 주도해버려, 모임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독서 토론 모임은 책 읽은 후의 생각나누기를 목적에 두는만큼,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발언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성원의 수가 4명일 때에 소외되는 사람 없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모임의 구성원의 수가 8명을 넘으면, 발제가 끝난 후 4인 모둠으로 나누어져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소규모로 논의가 진행되면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사람의 수도 줄어듭니다. 모둠을 나누기가 여의치 않다면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참여할 수 있는 신호등 토론이나 피라미드 토론, 모서리 토론, 브레인라이팅 토론 등의 새로운 토론 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2.5. 모임 날짜는 정기적으로 미리 정해두기, 담대한 마음 갖기
‘첫째 주 월요일’, ‘셋째 주 수요일’의 식으로 첫 모임 때에 모임일을 확실히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모임이 정기적으로 운영되어야 안정감이 붙습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참자가 늘어나다 모임이 와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습니다. 교사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들쑥날쑥 하는 참석자 인원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학교는 언제나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참석자 수에 너무 마음 졸이지 마세요. 두 사람만 모여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적은 인원이 모였을 때에 오히려 더욱 깊이 있고 내밀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2.6. 이런 모습으로 진행됩니다
자리에 모여 앉은 후 각자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낭독합니다. 그 부분이 내 마음을 흔든 이유를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내 눈빛이 더 머물렀던 부분, 내 가슴을 붙들어 두었던 부분을 다른이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경험은 울림이 큽니다.
발제자가 발제문을 낭독하고 생각할 문제를 제시합니다. 토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책에 대한 인상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긴장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때에는 책의 내용과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 이야기를 관련지어 말합니다. 이 책과 관련 있는 다른 책을 소개해도 좋습니다. 책의 내용과 나의 이야기를 관련지을 때에는 흐름이 신변 위주의 사담으로 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이후에는 소규모 모둠으로 나누어져 발제자가 제시한 주요 생각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때에 오고 간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형식을 갖추어 기록해 두면 나중에 꺼내볼 수 있어 좋습니다.
3. 교사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 학교와 청소년
윌리엄 에어스, <가르친다는 것>, 양철북
-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느만큼 왔는가. 우리 교육 현장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교육 개혁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란 어떤 것인지를 만화라는 장르를 활용해 알기 쉽게 제시한다.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교육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레너드 삭스, <남자아이 여자아이>, 아침이슬
- 최근에 밝혀진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근거로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차이에 근거한 분리교육을 주장하기도 한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특성 비교가 흥미롭다. 남녀공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읽으면 무릎을 탁 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싶다.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궁리
-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가 늘 갖고 있는 ‘작품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책. ‘더 뛰어난 사람이 있어서 모자란 사람을 가르쳐야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주의력을 갖고 집중 반복을 하면 지적 성취에 이를 수 있다’는 자크 랑시에르의 실험 내용을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독서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꽤 진지하게 자신감을 갖고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손우정, <배움의 공동체>, 해냄
- 일본에서 시작된 배움의 공동체 철학과 수업 방식을 통해 혁신을 이루어가고 있는 국내 학교 사례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너무나도 낯선 아이들의 배움열이 가득한 교실을 만나게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가슴이 뜨거워졌던 책이다. 단순히 피상적인 철학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 실제적 구체적 수업 안내를 마주하며 밑줄을 쉴 새 없이 그었다. 나의 교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열망에 가득 찬 교사들에게 권유한다.
레이철 시먼스, <소녀들의 심리학>, 양철북
- 소녀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또 등을 돌리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책. 따돌림에 관한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성이 수많은 인터뷰 사례들을 통해 제시된다. 읽으며 시시 때때로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겹쳐져 혼란스러웠던 책이다.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녀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하는 이 땅의 많은 부모, 교사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녀들 사이의 사소한 눈짓하나 속삭임 하나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댄 킨들런, <아들 심리학>, 아름드리미디어
- 오늘날 사회문화적 환경과 교육 시스템이 소년들의 정서 발달을 얼마나, 어떻게 저해하는지, 그래서 소년들의 내면세계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문화적 고정관념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소년들을 외롭고 두렵게 해왔는지. 반항과 분노, 폭력과 침묵으로 표출되는 소년들의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이 책은 우리에게 전한다. 읽고 나면 소년과 소녀들에게 똑같이 사랑을 표현하고 다정한 교육방법을 사용해야 함을 느낀다. 남자학급을 맡고 있는 여교사에게 특히 필요한 책이다.
도널드 L.핀켈, <침묵으로 가르치기>, 다산초당
- 최근에 읽었던 교육 지침서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본질적으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말'로는 전달할 수 없으며, 지식 자체가 타인에게로 전수될 수 있다고 믿는 개념 자체도 허구일 수 있음을 역설하는 책이다. 수업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지식을 구성하고 발견하며 혹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또한 그것이 본질적으로 우리 수업의 모습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말한다.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에게 권한다.
후쿠타 세이지, <핀란드 교실 혁명>, 비아북
- 핀란드 교실의 모습을 통해 우리 교육의 철학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게 한다. 개인의 노력을 제외하고 다른 요인은 모두 평등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신념, 상위권이 아닌 하위권을 올리는 일에 더욱 열중한다는 것, 학습의 속도를 개개인에게 맞추고 교사의 자율권을 최대로 제공한다는 것. 9학년까지는 경쟁을 유도하지 않는 다는 것. 우리 교육과의 구조적 차이 때문에 다소 기운이 빠질 수는 있으나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물음을 지니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면 추천 할 만하다.
● 세상의 여러 모습
콜린 베번, <노 임팩트 맨>, 북하우스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를 감행한 한 미국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환경 전문가가 아닌 너무나도 평범했던 한 인간이 시작한 일이라는 면에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의욕을 갖게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엄청난 환경 위기의 대재앙 앞에서 당장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손쉽고 소박한 방법들을 안내한다. 교훈적이지 않고 엄숙하지 않은 이 책에서 삶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하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유쾌한 책이다.
이진경, <뻔뻔한 시대, 한줌의 정치>, 문학동네
-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정치 현실을 뻔뻔한 시대로 바라보고 이러한 현실을 고치기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책,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찾을 수 있는 책. 인간의 오만함과 신자유주의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다. 선생님들의 정치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나눌 수 있어 좋다.
김용옥,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 휴머니스트
- 가장 많은 선생님들이 공감하고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위드그라실’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나무는 가지만 온 세상에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도 세 갈래로 온 우주를 감싸고 있어서 결국 모든 세계를 하나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내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꼭지가 된다. <우리 신화>,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와 엮어 읽으면 좋을 듯하다.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창비
- 평생 욕망을 억누르고 규범의 세계에서 살아온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욕망의 건강한 고백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욕망을 이야기 하며 욕망을 인정할 때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웅진지식하우스
- 왜 더 나은 삶을 기대할수록 절망하게 되는지, 바쁘게 살면 살수록 왜 우리의 삶은 텅 비어 가게 되는지. 이에 대해 작가 엄기호는 헛된 ‘희망’을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 삶의 파국을 세밀하게 증언한 후 이런 파국을 견디는 힘은 바로 내 삶과 내 곁의 서로 공감하고 용기를 북돋는 동료라고 말한다. 그 어떤 대안보다도 든든한 위로가 되어 준 두 글자 ‘동료’. 그것이 내 삶을 끌고 가는 견인차가 되고 있음을 나 역시 통감한다. 뭐든 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공지영, <의자놀이>, 휴머니스트
- 내가 이토록 몰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철저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배제되었던 이야기라는 뜻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의 해고 발표와 뒤이은 77일간의 옥쇄파업, 그리고 그 이 후 22번째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공지영 작가가 담담하게 르포형식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읽고 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런 뜨거움은 함께 느껴야 한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장기비상시대>, 갈라파고스
- 오늘 인류는 석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석유로 만든 옷에 석유로 만든 음식을 먹고 석유로 만든 집에 살며 석유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석유를 뿌리며 우리는 살고 있다. 중세시대 100명의 노예를 부리는 만큼의 안락과 윤택을 석유는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석유 역시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 석유가 사라지는 때, 인류에게 닥칠 비상상황은 어떤 것일까? 전 세계 석유의 50%를 소비하는 오일피크를 기점으로 석유의 고갈이라는 에너지 비상 시대에 인류에게 닥칠 여러 상황들을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로 설명한다. 그 구체적인 자료와 상상이 다가가는 질문은 결국 우리의 삶이다. 우리에게 편안이란, 성공이란, 문명이란, 그리하여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꼼꼼히 헤아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면이 있어 좀 아쉬운 책이지만 꼼꼼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마음이 다급하신 분들은 뒷부분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마인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 각 장별로 작가가 던진 질문에 토론을 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정의내리고 있는 철학의 뿌리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책이다.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버먼트>, 그린비
- 고병권의 책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뤘던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현실 적응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책이다. 일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진 문제점의 원인을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서 찾는다. 대의 민주주의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절차 ․ 제도를 마련해야한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갖는다. 개개인의 복원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한갓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사계절
- 우리 사회에 대한 돌직구와 변화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 최규석의 우화집. 어떤 사람은 최규석을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로 손꼽기도 한다. 만화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만화의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작가가 들려주는 우화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폐부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다루고 있어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에 좋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북하우스
- 유명 광고기획자 박웅현을 만든 인문학 책을 소개한다. 저자의 강독회를 쫓다 보면 어느새 인문학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우리들 삶을 깨뜨려준 도끼와 같은 책을 몇 권이나 안고 사는가? 일상 속 여유와 성찰을 얻을 수 있는 책 읽는 법을 담담히 일러주는 책.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이학사
- 철학을 우리 삶의 핵심적인 사건들과 연결 지으며 바로 여기, 가까운 곳에 철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린다. 강신주 작가는 그의 탁월한 입담으로 만남, 죽음, 사랑, 가족, 자본주의와 철학을 실컷 어울려 놀게 한다. 철학은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내가 매일 사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하재근, <TV쇼크>, 경향에듀
- TV가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작가는 다양한 연구결과와 구체적인 보고사례들을 종합하여 쇼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TV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적인 문제현상들을 연결 짓는 능력이 탁월하다. 읽고 나서 함께 나눌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책이다. TV는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김현대 외, <협동조합, 참 좋다>, 푸른지식
- 아직까지 자본주의경제의 주축은 주식회사다. 주식회사는 70을 투자해 30의 이익을 얻었다면 그것을 주주들에게 준다. 주식회사는 근본적으로 주주의 이익, 곧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가 시작부터 노동을 소외하고 있는 이유이다. 협동조합은 70을 투자해 30의 이익을 얻었다면 그것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준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최종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 그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작부터 노동을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둔다. 미국의 썬키스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등 협동조합으로 살면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과 이탈리아의 볼로냐, 한국의 원주 등 지역경제를 바탕으로한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들을 모았다. 쉽고 친절하며 명확하며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사회'와 '회사'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 시원하다. 근본적인 회의와 비판의 날카로움만큼이나 명확한 대안이 필요한 사람들, 명랑하고 진지하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 소설
이기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문학동네
- 소설가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이기호는 작품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고민들을 풀어내는 작가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기꺼이 작가에게 “화이팅”하고 외쳐줄 수 있다. 좋은 소설의 조건이 특정한 세계의 특정한 문제를 다루면서 ‘좌표 흔들기’의 역할을 하는가의 여부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을 통해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바로 소설의 힘이고 소설교육의 시작이자 끝이지 않나 고민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경화, <나>, 바람의 아이들
- 청소년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소설로 내면 심리묘사가 탁월한 소설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메어 자살한 19살의 청년 故육우당을 기리기 위해 쓴 청소년 소설로 소수자의 세계를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학급 아이들과 편견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을 때 함께 읽고 토론해 보면 좋다. 진지한 사고 이전에 동성연애에 관해 색안경을 끼고 혐오부터 하는 아이들에게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
김혜정, <닌자걸스>, 비룡소
- 한 학교에서 모범생들만 따로 모아 보충 수업과 자율 학습을 하는 심화반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것과 대비되는 개인의 꿈과 삶에 대한 소망을 다룬 이야기다. 여고생 네 명의 캐릭터가 위트 있고 아주 살아있어 특히 여학생들이 공감하고 좋아한다. 엄숙하지 않으면서도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게 되는 책이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창비
- 간과하기 쉬운 일상을 잘 풀어낸 작품이다. 김애란의 소설은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에서는 아버지가 죽음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 생각했다. 스스로의 상처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박민규, <더블 중 ‘근처’ & ‘축구도 잘해요’>, 창비
- 쉬운 책은 아니어서 두 번 정도 읽어야 작가의 표현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작가가 제대로 자신의 동굴에 들어가 숙성하여 얻은 듯한 삶에 대한 통찰과, 진지함을 놓치지도 않으면서도 기발하고 엉뚱한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 김민규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레이몬드 카버, <대성당>, 문학동네
- 어느 날 아내의 시각장애인 친구가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TV를 보고 있는 ‘나’의 곁에 다가와 앉고 ‘나에게 TV 화면 속에 보이는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해달라고 말한다. 대성당의 모습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그‘는 그렇다면 함께 손을 포개고 대성당의 모습을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급기야 ’그‘는 ‘나’에게 눈을 감은 채 대성당을 그려보라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의 한계와 마음으로 그리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김경욱, <동화처럼>, 민음사
- 평범한 남녀가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하는 모습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균열은 또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책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난 사랑들 속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눈물 흘렸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차이를 좁혀나갈 수 없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어른이라고 나의 내면까지도 어른일수는 없음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왜 소중하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를 가슴 와닿게 풀어낸다. 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카프카, <변신>, 문학동네
- 다른 어떤 책보다도 감정과 경험을 이입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생산성이 없는 사람은 곧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되는 소설 속의 현실이 씁쓸했다. ‘변신’은 그레고르의 변신이 아니라 오히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앞에 보인 가족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주)하서
- 익숙해서 그동안 무심했던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안’의 인물 유형에 대한 많은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발표 후 몇 십 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단절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최근의 소설 작품들과 비교해보았을 때에 문체나 구성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작가 김승옥의 문학사적 위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헤르타 밀러, <숨그네>, 문학동네
- 수용소문학으로 노벨상 수상작품이다. 이 글에서 그려지고 있는 수용소의 모습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인공이 수용소에서 나온 후 누구와도 자신의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데서 느끼는 고독이 우리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은희경, <아내의 상자(1998)>, 문학사상사
- ‘아내의 상자’는 남편과 아내의 소통의 부재를 다룬다. 그런 단절된 관계를 아내의 ‘불임’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주인공 부부의 모습이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쏟거나, SNS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창비
-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엮어 읽으면 좋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억측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영선, <아웃>, 문학수첩
- 동화 같은 표지를 넘기면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농촌마을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이권다툼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개개인의 인물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져 마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에 과연 아웃되는 사람은 결국 누구인지.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탄탄한 문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김중혁, <악기들의 도서관>, 문학동네
-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유쾌하게 읽은 소설이다. 모든 작품들이 음악을 소재로 한 점이나 음악 또는 악기에서 출발한 다양한 상상력이 참 재미있으며, 그 안에 그려진 인물들도 흥미롭다. 유쾌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물의 본질, 하나하나 모든 개체의 의미를 묻는 진지함까지 가진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 <더블린 사람들>, 문학동네
- 많은 작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애러비’. 하지만 읽어내기에 어렵다. 이 작품 뿐 아니라 소설집 전체의 작품들이 무척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호밀밭의 파수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아큐정전> 등 다른 작품을 떠오르게 만드는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다. 퍼즐처럼 조각조각을 맞추며 다시 읽으면 이전에 짚어내지 것을 읽어낼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진 소설이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 ‘기억’의 한계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는 법이다’ 고등학교 시절 너무나 뛰어나게 우수했던 ‘에이드리언’이 자살하면서 자신에게 남긴 일기장으로 인해 자신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던 ‘진실’ 들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반전을 경험하게 되는 ‘토니’의 이야기다.
김경욱, <위험한 독서>, 문학동네
- 독서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오가게 한 작품이다. 나에게 있어 독서의 의미는 뭘까, 독서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최인호, <타인의 방(1971)>, 문학동네
-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적인 소통이나 교감이 가능하지 않은 장소는 더이상 ‘우리의 방’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자신을 ‘타인의 방’에 어색하게 놓여있는 가구 같은 정물이라 여긴다. ‘그’는 사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소켓에 귀를 가까이 대고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자음과 모음
- 작가가 처음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책. 주인공 카밀라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다 읽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처음부터 책을 다시 읽게 된다. 이야기 자체로서 재미도 크지만, 서정적이고 깊은 느낌의 표현들이 책을 다시금 펼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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