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시는 서핑보드 디자인에서 시작하여 스트리트 의류 브랜드로 성장한 기업입니다. 현재에도 전세계 MZ 세대들의 패션을 흐르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의 시작점입니다. 1980년부터 스투시의 창업자 숀 스투시가 이 브랜드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살펴보면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의 핵심을 알 수 있습니다. 도움 되었으면 합니다.
1. 스투시 브랜드의 시작은 서핑 보드 디자인.
스투시 브랜드의 시작은 서핑 보드 였습니다. 스투시의 창업자 존 스튜시는 미국 서부의 도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은 도전이고, 자유이며, 젊음이고, 삶에 대한 철학입니다. 태양과 바다와 파도, 서핑과 사랑과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라면, 그것이 모인 인생은 이미 성공이라는 철학입니다. 숀 스투시는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 서핑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스투시는 어릴 때부터 서핑을 즐기면서 자랐습니다. 서프 보드샵에서 노는 것을 즐기던 스투시는 서프 보드 제작에 재능을 보입니다. 스투시는 1980년부터 서핑보드를 제작하였고, 자신의 보드에 정체성을 새기기 위해 'stussy'라는 자신의 이름을 그래피티 스타일로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투시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든 동력은 서핑보드가 아니라, 이 스투시 폰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투시는 서핑보드 홍보를 위해 1981년 무역쇼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이 쇼에서 스투시가 판매한 보드는 24개가 판매되었지만, 스투시 폰트로 만든 스투시 사인이 프린팅 된 검은색 티셔츠는 1천장이 팔렸습니다. 1982년 무역쇼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투시가 판매한 보드는 많지 않았지만, 스투시가 제작한 스투시 반바지는 100벌 이상이 순식간에 팔려 나갔습니다. 이것은 스투시가 서핑 보드와 함께 서핑 의류 브랜드를 창업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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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투시 브랜드 SS 로고는 샤넬의 CC 로고를 응용한 것.
스투시는 스투시 브랜드를 만들면더 더 간결하고 명확한 로고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싸인은 이미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다양한 제품으로 브랜드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더 간결하고 더 명확한 대표 로고가 필요했습니다. 스투시는 샤넬에 주목했습니다. 샤넬은 chanel이라는 브랜드가 있으면서도, 대표 로고는 CC를 사용했고, 이것을 자신들의 제품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스투시는 샤텔의 브랜드 전략을 응용해서, CC를 비틀어 SS를 만들었습니다. 이 로고의 디자인과 스토리는 젊은 아티스트와 뮤지션을 매료시켰고, 젊은 세대들에게 큰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스투시의 폰트 싸인과 스투시의 SS로고를 새긴 제품들이 서핑 패션을 넘어 스케이드 보드 패션을 거쳐 일상 의류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스투시의 스트리트 감성에 호응한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이 스투시의 제품을 적극 구매하였습니다. 그들은 스투시의 옷을 입고 미국 전역에서 공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인터뷰를 하고, 뮤비를 촬영했습니다. 스투시의 옷이 미국 전역의 청소년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스투시 브랜드의 매력은 이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넘어, 서부 해안을 장악했으며, 이 인기는 미국의 동부까지 확장하였습니다. 스투시의 인기는 미국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투시의 의류는 전세계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선택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스투시의 새로운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스투시 인스타그램
3. 스투시의 성공은 전세계 아티스트와 뮤지션을 고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투시 브랜드가 전세계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선택받기 시작했습니다. 스투시 브랜드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스투시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유럽과 일본의 아티스트와 뮤지션, 랩퍼와 팝스타, 서퍼 브랜드와 스케이트 브랜드로 무한히 확장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외부의 투자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스투시는 1984년 창업을 할 때 부터 외부 투자를 받지 않기로 원칙을 정해 놓았습니다. 당시의 기업 성장 공식은 대규모 투자를 받아 대규모 광고 홍보를 해서 대규모 소비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투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스투시는 자신들의 수익의 대부분을 아티스트와 뮤지션, 랩퍼와 팝싱어, 서퍼 비치와 스케이트보드 대회의 후원에 투자했습니다. 스투시 브랜드를 매개로 아티스트들의 콜라보 전시를 지원하고 뮤지션들의 콜라보 공연을 후원하고, 서퍼 비치의 문화에 투자하며 스케이트 보드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들은 스투시의 철학에 공감하고, 후원에 감사했으며, 견고한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스투시 브랜드를 메인 타이틀로 하는 미국 투어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같은 방식의 이벤트를 이어가는 일본 투어, 파리 투어, 런던 투어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스투시는 전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브랜드 보이. 올드스쿨 브랜드의 부활. 스투시 유튜브 영상
4. 스투시의 성공은 애플의 브랜드 메이킹에도 강력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투시 브랜드의 성공 과정은 많은 브랜드 창업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존의 브랜드 홍보의 기본 방향은 대규모 매스 미디어를 활용한 대규모 광고 홍보 였습니다. 스투시는 이런 방향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규모 투자도 거절하고 자신들의 길을 갔습니다. 스투시는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보내자는 서퍼의 철학을 지켰습니다. 이 철학을 따르는 서퍼와 보더를 시작으로, 뮤지션, 팝싱어, 아티스트들과 연합하고, 그들을 후원하고, 커뮤니티를 지원했습니다. 이들의 교류를 주선했고 이들이 함께 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청년들에게 강력한 홍보가 되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더 강력하게 홍보가 되었습니다. 이 영향력은 서핑, 스케이드 보드에 머물지 않고, 패션과 공연, 문화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스투시는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고, 스투시의 싸인과 로고가 붙어 있는 제품이면 무엇이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애플의 브랜드가 걸어온 길과 같습니다.
애플은 두 가지 홍보 방식을 모두 진행했습니다. 대규모 매스 미디어를 활용한 대규모 광고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광고의 내용이 기존의 광고와 달랐습니다. 기능과 가격을 설명하는 정보 전달의 광고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산업과 가치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이미지 전달의 광고였습니다. 애플이 무슨 제품을 파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광고는 가장 강력한 기능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애플을 궁금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애플은 뮤지션들과 영상제작자들과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세상은 점차 문화 컨텐츠 창작의 많은 영역이 디지털화 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뮤지션들은 이제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컴퓨터를 사들였습니다. 영화제작자들은 필름을 자르지 않고 컴퓨터를 사들였습니다. 컴퓨터를 음악을 창작하고, 컴퓨터로 영상을 창작했습니다. 컴퓨터로 음악과 영상을 유통하고 컴퓨터로 음악과 영상을 즐겼습니다. 애플은 뮤지션들과 영상인들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 내고, 뮤지션과 영상인들을 후원했습니다. 뮤지션과 영상인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모습이 노출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어떠한 광고 없이도 사람들의 SNS를 통해 애플의 로고가 흐르도록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