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랜드는 1970년대에 창업하여 1990년대에 뉴욕을 중심으로 널리 사랑받은 스트리트 브랜드입니다. 노동자들의 거친 작업화에서 시작하여 힙합 레퍼들과 뉴욕의 아트스트, 인플루언서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놀랍습니다.
1. 팀버랜드는 노동자를 위한 부츠였습니다.
팀버랜드는 1973년 누벅 소재의 방수 기능을 갖춘 산업노동자들의 작업화였습니다. 창업자 네이선 슈왈츠가 아들 시드니 슈왈츠가 런칭한 브랜드였습니다. 테이선 슈왈츠는 원래 슈 컴퍼니라는, 한국어로 신발 회사라는 이름의 평범한 작은 신발 가게를 1952년에 인수하여 운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과 비가 많이 내리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산업 노동자들이 늘 젖어 있는 신발로 작업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1965년 박음질 없이 가죽 어퍼를 밑창에 붙이는 방식의 주입식 몰딩 기술을 개발하여 완벽한 방수 부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73년 팀버랜드를 창업하게된 시작이 되었습니다.
팀버랜드는 나무로 우거진 깊은 숲이라는 뜻입니다. 팀버랜드가 자리잡은 뉴잉글랜드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6개 주, 메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 주를 포함한 지역으로 미국 동부의 뉴욕과 같은 대도시들에 목재와 식료품, 기본 필수 자재를 공급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건설을 위한 노동자들의 공급이 많이 필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숲에서, 도시에서, 특히나 온갓 도시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신발이 필요했고, 이들을 위한 브랜드가 팀버랜드였습니다.
2. 팀버랜드는 뉴잉글랜드에서 시작해 뉴욕에서 꽃피운 패션입니다.
뉴잉글랜드는 문화적으로는 뉴욕주와 뉴저지주, 펜실베이아 주 등 미국의 대도시 문화권의 뿌리에 해당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보스턴과 같이 미국 전역의 인재들이 모이는 명문대학들이 자리잡은 곳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의 바이오 산업들의 밸트가 형성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것이 팀버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산업 노동자들의 작업화였던 팀버랜드는 20년이 지난 후, 그들의 자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패션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명문대에 들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힙합신과 예술계에 들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볼 때, 그들의 눈에는 자신의 부모 세대들이 거친 자연 속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해 나가던 그 투박한 뒷모습에서, 유난히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던 누벅 소재의 노란색 워커를 떠올렸습니다.
팀버랜드의 운영진이 힙합 래퍼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신고 나왔을 때 너무 당황했던 이유는 이때문입니다. 팀버랜드의 운영진들은 팀버랜드의 워커들이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팀버랜드는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화였습니다. 그래서 건설 노동자들 외에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을 때 이 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것을 확인한 운영진은 팀버랜드의 영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 팀버랜드의 유행은 1990년대 뉴욕의 힙합에서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뉴욕의 랩퍼들이 팀버랜드를 신고 공연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힙합의 오랜 주제인 '정체성'에 대해서 노래할 때 팀버랜드 워커를 하나의 상징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팀버랜드의 워커를 더욱 눈에 띄게 한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뮤직비디오였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음악을 알리는 주요 수단으로 활약했던 뮤직비디오는 지금의 4K 화질에 비해 조악해서, RGB 색감이 강했습니다. 이때 팀버랜드의 노란색 누벅 부츠가 유난히 화면에서 강렬한 색감을 보였던 것입니다. 뮤직비디오의 3분 남짓한 시간 속에서 팀버랜드는 유난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랩퍼들은 더욱 팀버랜드의 부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팀버랜드의 사람들
팀버랜드가 뉴욕에서 자리잡기까지 데이비드 지 멀티샵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은 힙합 컬쳐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멀티샵이었습니다. 이 매장의 매니저였던 사람이 바로 로니 피그입니다. 로니는 나중에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명성을 넓힌 키스(KITH)를 창업한 인물이었습니다.
에미넴, 50센트, 우탕 등 뉴욕의 할렘과 뒷골목에서 노동자들의 문화 속에서 자란 랩퍼들이 자신의 출신과 연대감을 드러내기 위해 팀버랜드를 상징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후 팀버랜드는 랩퍼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고, 이것은 전세계 청소년들의 문화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선순환을 불러서 노토리어스 BIG와 칸예 웨스트 같은 2000년대 랩퍼들로도 전해졌습니다. 이들을 따라 수많은 인플루언서, 패셔니스타, 연예인과 영화배우, 힙합컬쳐를 따르는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5. 팀버랜드의 진화. 스투시. 슈프림.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콜라보.
팀버랜드가 레퍼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트리트 문화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잡으면서, 여러 다른 스트리트 브랜드와 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슈프림, 스투시,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베이프, 언디피티드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상품과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제품의 다양화는 물론 색상의 다양화도 시도하였습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최근 스투시와 팀버랜드가 협업한 부츠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규모는 급성장했고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6. 환경 친화 기업 2위, VF 그룹에 인수
팀버랜드는 2010년 기후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회사 2위로 선정되었습니다. 2007년 친환경 부츠 얼스키퍼, 지구지킴이 부츠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친환경 공법 연구 때문이었습니다. 팀버랜드는 친환경 소재의 신발을 제작하고 얼스키퍼 시리즈를 런칭하였습니다. 2015년부터는 전 제품에 친환경소재를 확대 적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팀버랜드 제품의 84%가 재생 소재, 오가닉 소재, 재사용이 가능한 소재 등 한 가지 이상의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한 재료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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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총평 - 될놈될!! 정체성!!
브랜드가 패션 아이콘이 되려면 브랜드의 끊임 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대중문화를 이끄는 아티스트, 뮤지션, 랩퍼, 연예인, 영화배우, 인플루언서에게 끊임 없이 협업을 제안하고, 광고를 맡기고, 자신들의 매력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브랜드는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아티스트와 뮤지션과 랩퍼와 인플루언서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정체성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더 많은 이들의 정체성과 접속할 수 있는 색깔과 스토리를 갖고 있을 때, 그 브랜드는 대중으로부터, 아티스트로부터 호출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결국 브랜드의 숙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